정치인의 말과 품격

파이낸셜뉴스 2025.04.24 19:16 수정 : 2025.04.24 19:16기사원문
정치인의 말, 진실이 생명
표얻기 위한 '말들의 잔치'
유권자들의 힘 보여줄 때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듣자면 조마조마한 마음을 피할 수가 없다. 그 내용이 워낙 어마어마한 것을 계속 쏟아내고 있어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사람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말은 그대로 미국의 정책이기 때문에 그 내용의 폭발성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그 표현방식도 국제무대에서 있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캐나다의 트뤼도 전 총리를 미국의 51번째 주의 지사라 하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면전에서 면박을 주는 발언들은 정상 간에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시정잡배의 말투를 무색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런 '거친' 표현에 비하면 '관세는 아름다운 것' 같은 발언은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협상을 즐기는 트럼프의 고도의 계산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즉, 상대를 일부러 무례하게 몰아붙인 후 적당히 양보를 해서 원하는 바를 얻는다는 것인데 필자도 수긍하는 바다. 그러나 그것이 협상의 기술일지라도 일국의 지도자가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물론 정치인은 단호하고 확실하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다. 아울러 정치인의 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따라서 이른바 직설적인 화법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편을 모욕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지금도 명연설로 꼽히는, 2차대전 당시 독일에 결사항전을 선언하는 처칠의 의회연설이나 케네디의 베를린 장벽 연설 등에는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는 있지만 상대에 대한 모욕과 조롱은 없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정치인의 말에는 남다른 품격이 있어야 한다.

사실 항상 품격 있는 말을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선거나 경선에 패했을 때 승복연설이 그런 예가 될 터이다. 미국의 경우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는 패배자가 승복선언을 함으로써 끝이 나는 것이 전통이다(놀랍게도 이 시점에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 주의 경우 개표를 끝낸다). 이 승복연설들은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명연설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에도 당내 경선의 경우이긴 하지만 1970년 김영삼 후보의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패배 승복, 2007년 박근혜 후보의 한나라당 경선 패배 승복 등 이른바 아름다운 승복이라고 표현되는 예가 있다.

사실 선거에 패배했을 때 만감이 교차할 것이고 실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을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상대편 측의 비판(비방이 아닌)을 기억하면 억울하고 분한 마음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 삭이고 상대 후보에 대한 축하와 앞으로의 국정에 대한 당부, 그리고 지지자에 대한 감사를 모아 표현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특별히 품격이 뛰어난 사람들만 정치를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고 제도와 관습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측면이 더 클 것이다. 그 이유야 어떻든 정치인의 말에 품격이 따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인의 말은 진실해야 한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해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이며 무례한 말보다도 더 안 좋은 일이다. 물론 이런 행태는 옥석을 구분해서 유권자들이 표로 심판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것이 말처럼 잘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안 있으면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번 선거에도 이미 예비후보들이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으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더 많은 말들의 홍수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품위 있고 진실성 있게 말하는 후보를 고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는 비단 이번 선거에서뿐 아니라 그 이후 모든 선거에 있어 다 중요하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에 의한 것이고 정치인들을 진실하고 품격 있도록 만드는 것도 국민들의 힘인 것이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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